PASTRY PILLOW

 

이상적인 회화에 닿기 위해 겹겹이 쌓아 올리는 하루들

 

 베개에 머리를 벨 때 종종 베개가 어떤 포털이 된 것처럼 과거의 꿈속 어느 순간으로 접속되는 느낌을 받는다. 넷플릭스 블랙미러시리즈에서 귀밑에 패치를 대면 가상현실에 순간 이동되는 것처럼 눈을 뜨면 현실로 돌아오고 다시 베개에 머리를 대면 또 다른 순간으로 접속되곤 한다. 이곳저곳 귀퉁이가 접혀져 있고, 밑줄이 쳐져 있고,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한 권의 책이나 이미지를 잔뜩 머금어 부풀대로 부풀어 오른 드로잉북처럼 기억의 잔상이 베개 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가 어느 순간에 풍경처럼 펼쳐지곤 한다. 각각의 페이지들 사이에는 새어나가고 비껴나가 버리는 약하고 무른 틈들과 각각 저마다의 공기층들이 있고, 마음속에서 잔잔하게 계속 올라오는 농담과 장난, 알 수 없는 죄책감이나 회환, 덧없음의 헤맴과 순간의 기쁨들, 과거에 대한 상념과 미래에 대한 아득함이 지금의 순간들에 겹겹이 박혀있다. 먼 미래에 내가 더 이상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할 시간대의 베개를 떠올리면 그랜드캐년의 지층처럼 수많은 페이지들로 이루어진 포털이자 늪지에 잔뜩 적셔진 페스츄리일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최근 작업에는 일상의 루틴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되풀이되며 반복되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의 덩어리들을 회화로 풀어나가고 있다. 이전에는 시간을 순간들의 나열로 감각했다면 요즘은 시간을 점차 덩어리로 바라보게 되었고, 그런 시간에 대한 감각이 회화를 다뤄나가는 방식으로도 연결되고 있다. 찰나보다는 반복되고 되풀이되고 겹쳐 있는 것들에 주목하고 있다. 내가 거주하는 곳은 늪지와 생태공원이 있고 작은 산이 있어서 철새들과 동물들이 많다. 매일 동네를 산책하고 주변의 동물과 새, 곤충의 움직임과 행렬을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인간의 생태와 별반 다르지 않거나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그들은 요즘 내 작업의 주인공이고, 화가로서 겪어내고 바라보는 일상의 시간을 색으로 물들이고 매일 관찰하고 있는 동물들과 정물들을 화면에 재배치하며 또 다른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 가고 있다.